응급의료 현장의 폭력에 대하여 대한응급의학회에서 국민께 드리는 호소문
심정지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응급의학과 의사의 근무일정을 확인하고 찾아가 진료 현장에서 낫을 목에 휘둘러 의사에게 큰 상해를 입힌 잔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이 사건이 비단 응급실뿐만이 아니라 의료계 전체에 대한 위협이라 판단하는 바, 정부와 유관 기관에 엄중 대처를 촉구하는 바이다.
의료 현장은 언제나 많은 갈등이 존재한다. 특히 예측 불가능하고 긴박한 응급실에서의 폭력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의사 뿐 아니라 간호사, 응급구조사, 보안요원 등 응급실에 근무하는 인력들에 대한 폭행은 매년 반복되고 있으며, 폭언이나 욕설은 일상사가 되어있음에도 근본적인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고있다. 현장의 의료진들은 지금 이 순간도 여전히 불안에 떨며 진료에 임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또다시 들려온 참사에 전국의 모든 의료진들이 망연자실해 있다.
2018년 대한응급의학회가 실시한 응급실 폭력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급의료인의 97%가 폭언을 경험했으며, 63%는 신체폭행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폭언이나 신체폭행은 한 두 번의 경험으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달에 한두 번 꼴로 겪고 있었으며, 특히 둘 중 한명인 55%에서 근무 중 실제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답한 것은 충격적이다 못해 개탄스러울 다름이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은 급박한 상황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환자의 생명과 회복만을 최우선으로 하며 일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 상황에서도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료진들이 최선을 다해 나름의 임무에 노력해왔다는 부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최우선이 되어야 할 환자가 언제 인가부터 두려움의 대상으로 되어가는 현실에 비통함을 금할 길이 없다. 의료진에게 최소한의 안전인 자신의 생명을 보장조차 해주지 못한다면, 환자의 치료에만 모든 노력을 쏟아 달란 부탁을 과연 할 수 있는가?
“의사가 오죽했으면?”, “환자가 얼마나 억울했으면?”같은 감정적인 반응이나 온정주의적 시각에 우리는 동의할 수가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폭력은 어느 장소 어떤 순간에도 용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의료진, 응급실 의료진들에 대한 폭력은 응급 진료가 필요한 다른 환자의 생명과 안전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기에 더욱 위험하다. 의사가 환자를 두려워하고 진료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가장 큰 피해를 겪게 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환자이다. 이러한 피해자가 여러분의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정부와 유관 기관에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우리는 전국의 모든 응급실에 즉각적이고 실제적인 경찰 또는 그에 준하는 공권력의 상주를 요구한다.
우리는 응급실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에 있어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는 단호한 처벌을 요구한다.
우리는 진료 중인 의료진에 대한 폭력을 현실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수단을 요구한다.
응급실에서 또 하나의 흉악 범죄가 발생했다. 응급실은 불이 꺼지는 곳이 아니다. 이 시간에도 전국의 응급실 의료진들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 치료에 대한 응답이 자신의 목으로 날아오는 낫이라면, 그 누가 이 일을 짊어질 것인가?
이제는 사회가 응답할 차례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대한응급의학회 회장 진영호, 이사장 최성혁 배상